본문 바로가기

전체보기/핀란드 육아

고난의 순간

5월 말부터 입덧이 시작됐다.

말로만 듣던 입덧이 나에게 오게 된 것이다.


입덧 초기: 2주 정도 속이 미식미식 거렸다. 식욕이 없어져서 겨우 입맛이 당기는 것으로 끼니를 때웠다.


입덧 중기: 6월 한달 내내 그리고 7월 중순까지 지속되었다.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멀쩡하던 냉장고에서는  왜 갑자기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걸까? 

남편이 코마게를 사다 주었다. (싱크로 나이즈 선수들이 사용하는...) 

유용하게 사용했다. 냉장고를 열때마다 끼면 답답하긴 했지만 냄새는 막을 수 있으니!


하루 종일 토할 것 같은 느낌으로 하루에 세번이상 토했다. 

물도 못 마셨다. 물을 못 마시니 종합 비타민도 못 먹고, 침대에 누워 있는데 너무 괴로웠다. 

목은 마른데 물을 못마시니 미칠 지경이었다. 


다행히 핀란드의 여름이었고 수입 과일들이 많이 들어왔는데 수박이 그나마 먹을 만 했다.

남편이 수박을 먹기 좋게 잘라서 여러 통에 담아 놓으면 

배고플때, 새벽에 깰때 마다 몇개씩 먹곤 했다. 

외국 수박은 한국 수박과 비할 수 없이 당도도 떨어지고 맛이없었지만

그래도 그나마 살게 해 주었다.

나중에는 수박을 도저히 못먹을 정도로 맛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단맛이 나는게 싫어졌다.

그래서 대체한 것이 토마토! 

토마토는 향도 세지 않고 달지도 않고 과즙이 많아서 

입덧이 끝날 때까지 함께 한 고마운 음식이었다!

입덧에 좋은 음식과 방법들을 검색했지만 나에게는 다 소용이 없었다.


밖에 나가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고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가끔 병원에 가야 하면 길거리에서 토하지 않을까, 쓰러지지 않을까 긴장됐고

한번은 집 근처 다 와서 토를 한 적도 있었다.


저녁에 침대에 누우면 하루도 빠짐 없이 남편에게 물었다.

"입덧 언제 끝날까....?"

그때 남편이 해 준 이야기는,

"예전 유태인 수용소에서 조만간 고난이 끝날 것이라고 기대했던 유태인들은 많이 못견디고 죽고, 

쉬이 끝나지 않고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유태인들이 많이 살아남았데.. 너도 그렇게 생각해."

하루가 너무 고된데 몇 주 몇 달간 계속 지속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 했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냥 견디는 수 밖에.

다행히 병원에서 초음파 검사를 하면 태아는 건강했고 엄청 활동적이었다.

"엄마는 고생하는데 너는 아주 팔팔하구나. 그래도 너라도 건강하니 다행이야."


한 핀란드 지인이 해 준 이야기가 있다.

남편이 며칠간 독일에 출장을 가있었는데

남편이 없는 동안 친정 집에서 잘먹고 잘 지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남편에게 전화왔는데 바로 토하러 갔다고.....;;;;


7월 초에 남편이 에스토니아에 학회를 갔다.

1주일동안 혼자 있는게 불안하기도 하고 걱정도 많이 했는데

다행히 걱정했던 것보다는 잘지냈다.

남편이 집에 돌아왔을때 울렁거리긴 했지만 다행히 바로 토하지는 않았다. ㅎㅎ


몸무게가 5키로가 빠졌다.


입덧 후기: 7월 중순이 되면서 입덧이 조금 호전 되었다.

하지만 입맛이 돌아 오지 않았고 여전이 미식거렸으며

조금 줄긴 했지만 여전히 토했다. 

영양을 챙겨야 했고, 배는 고픈데 먹고 싶은게 없고

운동도 해야 했으나 여전히 힘은 없었다.

7월 말쯤 되서 미식거리는게 없어지면서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입덧 끝나고 한국들어가서 몸 보신좀 할까 고민도 했었는데

먹으러 들어가는 건 좀 아닌것 같고

돼지 될 것 같아서 안 들어 가기로 했다.




8월이 되서야 입덧이 끝났다.

열심히 논문을 쓰기로 결심했던 6,7월이 고난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핀라드의 최고의 계절인 여름이 다 가고 날씨는 조금씩 쌀쌀해 지기 시작했다.

입맛은 돌아오기 시작했는데 먹고 싶은게 없었다.


원래는 이번 여름 방학에

탈린, 독일, 몰타 여행을 하려고

기차, 비행기, 숙소를 다 예매했는데

아기가 생겨서 여행이 취소가 됐다.

비행기 값은 다 날렸지만

독일, 몰타 숙소비용은 전액 환불받았고

다행히 헬싱키가는 기차와, 탈린가는 배와 숙소는 날짜가 변경이 가능해서

남편에 8월 초로 잠정적으로 변경해 놓았다.

입덧이 거의 끝났겠다 아직 힘은 없었지만

기분전환 삼아 탈린으로 여행을 다녀오게 되었다.

먹방 여행이 되었다. 입맛이 정상이 되었다!


이리 해서 나의 입덧은 거의 3개월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너무나 힘들었고 

내 인생에서 힘든 걸로 손에 꼽는 순간이었다.


나중에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본 결과

입덧이 아예 없었던 사람들 부터 입원까지 했던 사람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나의 입덧이 조금 심한 편에 속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람마다 차이가 많아서 왜 입덧이 심한지는 과학적으로 알 순 없지만

그래도 다행인건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이 경험이 나를 더 성숙하게 하고 다른사람들의 고통을

위로해 줄 수 있다면 좋겠다.


힘든 순간 내내 함께 해준 남편에게 너무 고맙다.

저녁마다 똑같이 반복되는 질문을 받아준 것도!


입덧하는 임산부들 모두 힘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