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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보기/핀란드 일상생활

작년 크리스마스 휴가

<지난 글 올 해 크리스마스 계획에 이어서>

 

휴가 시작 한 달 전, 드디어! 호텔로부터 5박 6일의 일정표를 메일로 받았다. 식사시간, 다양한 실내활동, 실외활동들로 알차게 계획된 일정표였다. 그걸 보는 내내 마냥 행복했다. 하트 뿅뿅. 더 좋았던 건, 함께 휴가를 신청한 친구 가족도 추가로 당첨이 됐다는 것이었다. 빨리 그 날이 오길!

 

휴가를 기다리는 동안, 감사하게도 아무도 감기에 걸리지 않았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휴가가 시작되었다! 숙소는 집에서 차로 2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었고, 오후 3시쯤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고 방을 배정 받았다. 싱글침대 2개, 소파베드 1개, 2층짜리 벙크베드 1개가 있는 넓은 방이었다. 방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은 신나서 2층 침대를 오르락 내리락. 아직 어린애들이라서 2층 침대를 잠 잘때 사용할 순 없었지만 아이들이 놀 수 있는 하나의 놀이터(..?)로서 좋았다.

 

 

오후 5시, 우리와 같은 휴가 패키지에 속한 그룹이 강당에 모여 오리엔테이션을 했다. 일정에 대해서 간단한 설명을 듣고, 실내활동 하는 곳들을 안내해 주었다. 핀란드어로 진행되었지만 함께 간 친구가 통역을 해 주어서 다행히 알아 들을 수 있었다. 오늘 잘 쉬고 내일부터 달려보자아~

 

다음날, 본격적인 휴가가 시작되었다. 식사는 하루에 총 네번이 제공됐다. 아, 점, 저, 그리고 자기전에 간단한 식사. 제 작년 크리스마스 휴가 때 식사때문에 고생했던 걸 생각하면 이 얼마나 행복한 식사인가!

 

 

그리고 여러가지 활동들로 하루를 알차게 보낼 수 있었는데, 실내활동으로는 스파, 볼링, 실내체육관, 어린이 놀이방등이 있었고 실외활동으로는 보물찾기, 오리엔티어링이 일정에 있었다. 또, 개별적으로 썰매를 타거나, 얼음동굴(별도비용)을 즐길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좋았던 것은 함께 갔던 친구 가족중에 까르 또래 친구가 있었던 것이다. 서로 방에 초대해서 함께 놀기도 하고, 놀이방에서도 함께 놀았다. 우리는 까르가 핀란드어로 친구와 노는 것을 처음 보았다. 아직 유창하게 말하는 것은 아니였지만, 자연스럽고 서스럼 없이 노는 걸 보니 새삼 기특했다. 그 동안 빠이바꼬띠 다니면서 못 알아듣고, 말 못하던 시간들을 잘 견뎌낸게 얼마나 대견하던지.ㅠㅠ

 

 

그렇게 즐겁게 휴가를 보내는 것 같았는데, 남편과 나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로부터 피곤이 점점 쌓이기 시작했다.

 

첫번째는, 잠을 잘 못 잔 것이었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피곤한건 어쩔 수 없었다. 난간없는 넓은 침대에서 아이들은 빙글빙글 돌면서 잠을 잤고 남편과 나는 치이면서 쪽잠을 잤다. 한 번은 첫째아이가 자다가 침대에서 떨어졌다. 다행히 조금 울다가 금방 잠이 들었지만 아이가 또 떨어질까봐 노심초사 하다가 잠을 설친적도 있었고, 크리스마스 저녁에는 1층 식당에서 밤 9-11시까지 콘서트를 하는데 2층 우리 방에서 노랫소리가 꽤 크고 선명하게 들렸다. 다행히 아이들은 콘서트가 시작하기 전에 잠이 들었지만 노랫소리에 깰까 걱정도 되고 시끄럽기도 했어서 우리는 결국 콘서트가 끝나고서야 한참 있다가 잠이 들었다.

 

남편이 들어갈 자리가 없네...? 여보 사진찍고 어디서 잤어??;;;

두번째는, 식사시간이었다. 첫날, 우리는 맛있게 차려져 있는 갖가지 음식들에 감동하며 몇 접시를 가져다 먹었는지 모르겠다. 그와는 달리 아이들은 어떤 음식에도 별 감흥이 없었고 먹어보지도 않고 안먹는 음식들이 많았다. 음식이 입에 안 맞는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먹이려고 신경쓰는게 힘이 들었다.

 

세번째는, 여러가지 활동들을 하다보니 당연히 쌓이는 피로감이었다. 하루에 한번씩 스파를 했고, 이런저런 활동들을 계속해서 하다보니 육체적으로 피곤할 수 밖에.

 

이런 이야기들을 남편과는 특별하게 나누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린 아이들과 여행을 하다보면 잠 잘 못자고, 잘 못 먹고, 피로가 쌓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들이기 때문에 그냥 그러려니 하며 지냈던 것 같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흘러 넷째날 아침이 되었다. 일찍 눈이 떠져서 일어나 소파에 앉았는데, 문득 '난 왜 이곳에 와서 힘들어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정말 감사하게 받은 휴가였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휴가였는데, 막상 와서 왜 이렇게 맘껏 즐기지 못하고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냔 말이다. 며칠 잠 좀 못자면 어떻고, 애들 며칠 밥 좀 잘 못 먹으면 어떻게 된다고. 집에 가서 잘 자고 잘 먹으면 되는데. 정작 아이들은 잘 자고, 잘 놀고, 먹는거에 그닥 집착하지 않고 있었다.

 

그날 아침, 맘을 고쳐먹었다. '그래, 지금부터라도 남은 시간 신나고 즐겁게 보내자!' 그러고 나니 이내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던 중 둘째 꿀비가 깼다. 다들 얼추 일어날 시간이 되어서 조금 기다리는데 남편과 첫째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꿀비랑 어두운 방에서 할 것도 없으니 아침 먹으러 나갈 준비나 하자, 준비하다 보면 깨겠지 했는데, 다 준비한 후에도 일어나지 않아서 깨울까 고민하다가, 잠을 설쳤을 남편과 낮잠을 안자는 첫째를 궂이 깨울필요가 있나 싶었다. 먼저 먹고 있으면 둘이 일어나서 내려오겠지 생각하고 꿀비와 식당으로 갔다.

 

식사를 하고 있던 중에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야? 왜 안와? / 우리 지금 식당에서 밥 먹고 있는데? 일어났어?

우리는 벌써 일어나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지. 뭐야 말도 안하고./ 앗! 미안해. 미안 ㅠㅠ 얼른 내려와~

 

화난 남편의 목소리를 듣고 아차 싶었다. 말을 하고 내려왔어야 했는데... 오늘부터 정말 신나고 즐겁게 보내려고 결심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이런 일이 생기다니... 남편과 까르가 내려왔고 남편의 표정은 상당히 좋지 않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 시간 정도 기다렸다고 한다. 난 진심으로 너무 미안했고, 100번 사죄했다. 

 

식사를 마치고 1층에 있는 놀이방에 갔다. 조금 놀다보니 둘째가 응가를 했다.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데 나도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남편에게는 우리 둘다 화장실을 가야 할 것 같아 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볼일을 마치고 방에 있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야? 왜 안와? /??? 우리 방인데? 

1층 화장실 간거 아니었어? 우린 올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는데? /애 기저귀도 바꿔야 하고 나도 볼일 봐야 한다고 했잖아. 1층 화장실에서 하기 불편해서 방으로 왔어.

/하... 또 왜그러냐... 아까도 그러더니... 말을 하고 가야지... 알겠어.

 

이번에는 내가 심기가 불편해졌다. 애 기저귀 바꾸고 나도 볼일 보러 가겠다고 했고, 유모차까지 가지고 갔는데 방으로 갔을거란 생각은 왜 안했지? 그리고 설령 그랬다한들 그게 화가 날 일인가? 아침식사 때의 일은 정말 나의 잘못이 맞다는 생각이었지만 이번 건 좀 아닌 것 같았다.

 

잠시 후 남편이 방으로 들어왔고 우리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제대로 말하지 않고 내 생각대로 행동 했던 것을, 남편은 자신이 피곤해서 그랬는지 여러가지 있을 수 있는 상황들을 고려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3일동안 24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서로 대화가 부족한 상황에서 피로까지 쌓이니 사소한 일로도 싸우게 된 것이다. 그렇게 화해를 한 후에,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혼자 생각했던(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힘들어하던) 것을 남편에게 이야기 했고 우리는 남은 시간을 즐겁게, 감사하면서 보내기로 했다. 

 

그 후 이틀은 잠도 그럭저럭 잘 잤고, 식사시간때는 아이들에게  궂이 먹이려고 안하니 편해졌다. 

 

 

여행이 끝나기 전에 마음을 고쳐먹어서 너무 다행이다. 여행 다 끝나고 이런 생각을 했다면 얼마나 후회했을까. 이 포스팅이, 그 여행중 그 순간을 즐기지 못했던 나의 모습을 기억나게 해서, 다시 즐거워지는, 힘이나는 포스팅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