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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보기/핀란드 일상생활

올 해 크리스마스 계획

여느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핀란드에서도 크리스마스는 연중 가장 큰 명절이고, 대부분의 시간들을 가족들과 함께한다. 긴 겨울을 이겨내는데 아주 중요한 시기인것 같다. 핀란드에 처음 와서 첫번째, 두번째 해에는 지인들에게 초대를 받아서 선물 주고 받고 맛있게 차려진 음식들을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고,

 

2014년 까리나와 아끼가족과

 

2015년 마르띤 가족과

셋,넷, 다섯번째 해에는 임신하고 애낳고 육아하면서 정신없이, 그래서 소소하게 시간을 보낸듯 하다.

2016년 까르를 기다리며, 2017년 까르와, 2018년 교회에서

 

그러다 여섯번째 해인 작년 2019년 크리스마스를 오롯이 우리 네명 가족끼리 보내게 되었는데, 까르는 세살이 조금 안됐고, 꿀비는 8개월쯤이었다. 지인들의 배려(..?)로 어린 아기들을 데리고 있는 우리를 아무도 초대해 주지 않았다. 육아에 지친 우리는 기분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곳저곳 알아보다가 집에서 85km 정도 떨어진 작은 스키장과 썰매장이 붙어있는 단독주택형태의 숙소를 찾았고, 1박 또는 2박보다 상대적으로 3박부터 저렴해서 3박 4일을 크리스마스를 껴서 23~26일 로 갔다오게 되었다. 아침정도는 만들어 먹고, 점심은 맛있는 음식을 사먹고, 저녁은 간단하게 만들어먹거나 사먹을 생각으로 여행을 시작하였다.

 

핀란드의 작년 겨울은 유난히도, 이상적으로 따듯한 겨울이었다. 그래서 단단해야 할 쌓인 눈들이 슬러시가 되어있었고, 우리 숙소 옆의 스키장과 썰매장은 문을 닫고 불도 켜놓지도 않았다. 

텅빈 스키장

아이들을 썰매에 태우고 여기저기 다녀보는데... 할게 없는데다, 해는 오후 3시쯤에 지니 주변이 깜깜해서 밖에 다니려면 손전등을 들고 다녀야 했다. 한번은 숙소 근처에서 차로 어디 좀 나가보려고 움직이다가 길이 잘 보이지 않고 슬러시길을 더듬더듬  후진하다가 눈에 가려져 있는 큰 바위옆에 쳐박혀 곤욕을 치루기도 했다.

 

한창 놀땐데 어둡고 눈은 슬러시에 차는 박히고... 이 와중에 애들은 귀엽네...

 

더욱 최악이었던 것은 생각보다 외진 곳이어서 근처에 걸어서 갈만한 식당은 없었고, 가까운 곳으로 운전해서 나가면 그나마 몇 개 없는 식당들이 다 운영을 안하고 있었다. 마트마저 크리스마스 이브 오후부터 당일까지 문을 닫았다. 결국 나는 삼시세끼 먹을거 준비하느라, 남편은 식기세척기 돌리느라 바빴다. 까르는 태어나서 3년동안 본 적없는 티비를 이때 다 본 것 같다. 이럴거면 그냥 집에 있을걸, 집과 다른게 뭐냐, 집보다 못하다면서 후회를 했지만 돌이킬 순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그냥 집에 가도 미련없었을 것 같다...) 

요리의 흔적들과 설겆이 거리들

 

핀란드에 와서 크리스마스때 한번도 밖에 나가본적이 없었던 우리는 처음으로 그렇게 최악의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크리스마스때는 그냥 집에 있는게 최고라는 교훈을 배우며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서 돌아왔다.

 

그런 경험 후,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특별한 계획이 없었던 찰나에 지인으로 부터 메세지가 왔다. 요지는 핀란드 정부가 정상적인 가격으로 숙소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나 가족들에게 휴가 비용을 보조해주는 게 있으니 신청하라는 내용이다. 여러가지 휴가를 보조해 주고 있는데 현재는 크리스마스 휴가비용 신청을 받고 있고 이틀 후에 마감이 된다는 내용이다.

 

처음 내용을 들었을 때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우리가 경제적으로 그렇게 부족하지 않다는 생각에 그런게 되겠냐 싶은 생각으로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www.solaris-lomat.fi/

 

Solaris-lomat ry – Tuettujen lomien järjestäjä

Tuettua lomaa voivat hakea pienituloiset Suomessa asuvat yksin tai perheen kanssa. Loman voi saada korkeintaan joka toinen vuosi. Lomat myönnetään taloudellisin, sosiaalisin ja terveydellisin perustein. Katso lisätietoa hinnoista, valinnasta, lemmikeis

www.solaris-lomat.fi

신청하기 전에 내가 어떤 형태의 그룹에 속하며 어떤 Theme으로 여행하고 싶은지를 결정하게 되어 있었다. 그룹의 종류는 다양했는데, 노인복지, 청각장애인, 어린 아이가 있는가족, 큰 아이들이 있는가족, 청각장애가있고 수화를 사용하는 가족, 신장과 간에 질병이 있는 아이를 가지고 있는 가족, 장애인, 시각장애인, 일하고 있는사람, 조기퇴직한 사람, 막 은퇴한사람들 등, 전반적인 혜택의 대상은 크게 가족과 노약자 인 것 같았다.

 

보조내용은  12/22~26 5박 6일동안의 호텔비용을 성인 인당 100유로, 두명이라 200유로, 아이들은 무료, 아침, 점심, 저녁 식사를 제공한다. 아이들이 있는 가족그룹에 리스트된 다섯 곳의 호텔들은 가격에 포함되어 있는 스파가 있었고, 그밖에 많은 편의시설과 오락시설이 있는 곳이었다. 크리스마스에는 산타클로스도 온다고 한다. 한번 당첨되면 다음 해에는 신청 할 수 없다. 

 

신청하는 방법은 다섯 곳의 핀란드 내 호텔 리스트(아이들이 있는 가족그룹을 선택했을 시) 중 세 곳을 선택해서 선호순위로 신청할 수 있었다. 우리 집과 가장 가까운 곳을 1순위로 신청했고 나머지 두 곳을 추가로 신청했다. 신청서에는 먼저 단답형 형태로 기본적인 가족정보와, 수입, 대출금등을 적게 되어있었고 두번째로는 서술형으로 내가 이 휴가비용보조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 경제적, 사회적, 정신적, 그밖에 어떤이유가 있는지를 적는 것이다.

 

신청서를 작성하는데 뭔가 진지해 졌다. 처음에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적다 보니 왠지 될 것 같은... 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커지면서 성심 성의껏 신청서를 작성했고, 경제적, 사회적, 정신적인 이유들이 적절하게 파바박 떠오르면서 시간가는줄 모르고 작성한 후 남편에게 검사를(..?)받고 제출했다. 9월 22일에 신청서를 제출했고 휴가 두달 전인 10월 중순 이후에 연락이 온다 해서 그냥 그렇게 잊고 지내...지 않고 매일매일 이메일을 기다렸다. 

 

그러다 지난주 꿀비는 낮잠자고 까르와 함께 별 생각 없이 조용히 방에서 노는 와중에 남편이 들어오더니 기쁜소식이 있다고 했다. 왠일로 그때는 생각 안하고 있었는데 당첨(..?) 됐다는 메일을 받았다는 얘기에 '꺄~~~' 꿀비깰까봐 소리는 못 지르고 소리없는 함성과 막춤추는 나를 보며 까르는 무슨 일인가 하며 쳐다보았다. 그 이후로 며칠간 그 생각만 하면 어깨춤이... 현재 당첨 바우처를 받은 상황이고 조만간 호텔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혜택들이 있고 어떤 프로그램들이  있는지에 관련된 메일을 받게 된다고 한다. 

 

네명 가족 혼자벌이에 엄청난 대출금까지 있었던 것이 당첨의 비결이 아니었나 싶다. 친구 가족도 신청했는데 안타깝게 안 됐다고 한다. 그 친구는 애도 세명이었고, 조그만 집에 월세를 내며 살고 있었는데 맞벌이에, 대출이 없고, 현재 육아휴직으로 엄마육아수당도 받고 있어서 순위에서 밀린 것 같다고 한다. (그 친구가 단체에 전화해서 물어봤더니 현재 거의 첫번째 대기 순번이라고 했단다.) 우리는 그 보조비용을 받을 정도로 가난한 거였고 너희들은 부자라서 그런거라고 그 친구를 위로했는데 진심으로 그 친구가 되서 함께 놀러 갔으면 좋겠다.

 

작년 크리스마스의 설움이 한 순간에 눈 녹듯 녹았다. 9월에 한국에 가려고 끊어놓은 비행기 티켓도 취소해서 적적하던 참에 크리스마스를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핀란드에 이런 친가족적인 복지와 제도들에 너무 감사하고 조금이나마 타지생활에서 활력이 생기는 기회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