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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보기/핀란드 박사생활

영어의 어려움?

핀란드에는 포닥(박사후과정생)을 위한 국가펀드가 있다. Academy of Finland라는 국가소속의 교육/연구 펀딩기관에서 매년 포닥을 포함해 여러 학술연구활동을 지원하고 있는데 포닥의 경우 3년을 지원해주기 때문에 지원자가 많아 매년 경쟁률이 꽤 높은 편이다.


올해도 6월에 해당펀딩과 관련된 공지가 Academy of Finland 홈페이지에 올라왔고 가까스로 9월 졸업을 확정한 나는 9월이 지원마감인 이 펀딩에 지원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지난해 부터 들어간 Mobility라는 항목때문이었다. 핀란드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상식은 '핀란드인들은 한번 일했던 사람과만 일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문화는 대부분의 나라에 존재하는것이 사실이지만 핀란드인 역시 모르는 사람과 일하는 것보다 한번 경험해보고 믿을만한 사람과 함께 일하기 원하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핀란드 사람들은 한곳에서 일을 시작하면 그곳에서 계속 있길 원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 예로 우리 학과에 있는 포닥 연구생들은 대부분 우리학교 출신 박사생들이다. 


하지만 요즘 연구트랜드가 아무래도 학제간 연구가 많고 이로인해 연구자들 간의 Collaboration이 점점 더 중요해지면서 Academy of Finland에서도 이 Mobility라는 지원자격을 지난해 부터 삽입하여 박사생들의 이동 및 학제간 경험을 장려하고 있다. 이 자격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포닥 연구자는 다음의 두가지 중 하나의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첫째는 포닥연구를 자신이 졸업한 곳이 아닌 다른 기관에서 할 것! 둘째는 포닥연구를 자신이 졸업한 학교에서 하려면 다른 기관에서 적어도 6개월간 업무경험을 쌓을 것!


나의 경우 같은 학교 같은 교수 밑에서 포닥을 하려고 하다보니 두번째 조건을 충족시켜야 했다. 하지만 여기서 영어로 인한 문제가 생겼다. 바로 그 흔한 'since'라는 단어의 해석 때문이었다. 지원공고문에는 Mobility의 두번째 조건인 6개월간의 업무경험을 'since phd completion', 즉 박사를 '마치고' 6개월간 자신이 졸업한 곳이 아닌 다른 기관에서 업무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명시되어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이 단어를 'until'이라고 받아들였다. 즉 박사를 졸업하기 전에 6개월의 경험을 이야기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해석의 문제로 나는 지난해 부터 Academy of Finland의 직원과 여러차례 이메일을 주고받았고 내가 계속해서 since를 until로 해석하는 해괴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서로 알수없는 대화가 오고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한 직원이 친절히 그 자격조건을 다른 말로 풀어써줌으로 나는 무엇이 문제인지 알수 있었고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영어로 학술논문도 쓰고 연구계획서도 내야하는 지원자가 since라는 단어의 뜻도 잘못알고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아....창피해....어쨌든 나는 나의 잘못된 해석과 오해를 직원에게 이야기 했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리고 이 조건으로 인해 Fresh 박사인 나는 올해 이펀딩에 지원할 수 없음을 명확히 알게되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경험은 참 해괴한 경험이었다. 영어로 학술논문도 쓰고 (아마도 논문에 since라는 단어를 백번도 넘게 썼을 것이다) 발표도 하고 일상을 살아가는 내가 이 중요한 상황에서 since라는 단어를 이렇게 완벽히 이상하게 받아들였다니...이건 영어의 어려움인지...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해야하는건지...아무튼 이일을 계기로 영어단어를 하나하나 꼼꼼히 들여다보는 습관이...생길까?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