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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보기/핀란드 연구원생활

연구(계획서)에 대한 고민

매년 9월은 나에게 반복되는 숙제를 안겨준다. Academy of Finland에 연구계획서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 정년트랙 계약의 한 부분이다). 이 숙제를 끝내려면 계획서가 당선되어 펀딩을 받아야 하는데 경쟁률이 매년 10대 1을 넘기 때문에 주변에서도 이 펀딩을 받은 사람이 거의 없다. 나 역시 지난 2년간 두번의 고배를 마시며 또 지원을 하려니 고민이 많다.

 

고민을 단순화 하면 이렇다. 내가 잘 하는 분야를 하자니 주제가 획기적(innovative)이지 않은 것 같고, 획기적인 주제를 하자니 내가 여태까지 한 것과 맞지 않고...지난 2번의 지원에서 낙방한 주된 이유가 연구주제에 대한 지원자의 경쟁력은 높은데 연구주제 자체가 획기적이지 않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런 고민은 계속되었다.

 

아내에게 이 고민을 예기하자 동감을 해주면서 해준 한가지 제안은 너무 사무실에만 앉아있지 말고 운동도 하고 나가서 돌아다니기도 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창의적인 생각도 나지 않겠냐며...

 

맞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내 사무실도 그리 창의력이 샘솟는 공간은 아니다. 5평 남짓한 공간에 책상과 컴퓨터만 있으니...하지만 왠지 일은 사무실에서만 해야할 것 같은 생각에 별일 없으면 책상 앞에 주구장창 앉아 연구를 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내의 충고를 따라 일을 하다 좀 뻐근해졌을 때 사무실 밖 라운지로 나가 보았다. 

 

라운지에는 간단히 스트레칭을 할 수 있는 공간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의자가 마련되어있다. 평소같으면 학생들로 늘 붐비는 곳인데 요즘 대면수업이 거의 없어 한가했다. 그래서 턱걸이도 좀 하고 고무밴드를 이용하여 스트레칭도 좀 해보았다. 한결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내친김에 밖으로도 나와 보았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 바로 뒤는 이렇게 아름다운 숲길이 조성되어있다. 그래서 식구들과 가끔와서 산책을 하곤 했었는데 혼자서 돌아다녀 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오늘 처음으로 혼자 이 숲길을 거닐며 천천히 호흡을 해보았다. 흠...좋은데?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고 또 편안히 자연을 바라보기도 하다보니 시간이 20분정도 흘렀고 그렇게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돌아와 든 생각은... 여전히 연구(계획서)에 대한 고민은 남아있지만, 어차피 연구하는 사람으로 사는 이상 그런 고민이 계속해서 가지고 가야 할 숙제라면, 좀더 편안한 마음으로 여유를 가지고 일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종종 이렇게 산책도 하면서 말이다.

 

아...아내의 말은 언제나 진리라는 결론 또한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