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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보기/핀란드 석사생활

핀란드 교육대학 수업참여 - 중등과학 (2) - 모델링 (Modeling)


두 번째로 참여한 수업은 모델링에 관한 것이었다.


수업이 시작되자 교수는 학생들에게 빈 종이를 하나씩 꺼내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부르는 단어에 대해서 떠오르는 생각을 바로 적어보라고 했다.


첫번째 단어는 "모델"

모델? 뭐라고 적지? 난 "모델하우스"를 적었다 ㅡ.ㅡ;;


두번째 단어는....

"모델!"

또?

뭐라고 적지? 

난 "슈퍼모델"을 적었다. ㅡ.ㅡ;;;


세번째 단어는...예상한대로 "모델.." 네번재..다섯번째...


이렇게 같은 단어를 다섯번 부르고 그 단어에 대해서 연상되는 것에 대해서 종이에 적게하였다.

지난번 수업과 마찬가지로 4개의 조가 있었는데

학생별로 무엇을 적었는지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학생들도 있었고

또 좀더 과학과 연관시켜서 연상한 학생들도 있었다.


이 후 교수는 아래와 같은 박스를 조별로 한개씩 나누어 주었다.



박스를 흔들어 보니 무언가 채워져있었다.


교수는 

"모든 박스에는 각기 다른 물건들이 들어있습니다. 조원이 함께 가능한 오감을 모두 동원하여 박스에 뭐가 들어있는지 맞혀보세요. 단! 박스를 열어선 안됩니다."


우리는 흔들어보고 던져보고 들어보고 등등...뭐 별로 할게 없지만..가능한 방법을 동원하여 뭐가 들어있는지 추측하였다.



추측(?)이 끝나면 온라인상으로 

들어있는 물건이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얼마나 확신하는지?

더 확신하려면 어떤 도구가 필요한지?

이유를 적어야 한다.


예를 들면..

우리조는 박스안에 머리가 둥그렇게 생긴 핀이 들어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유는 쇠들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나고 조금만 기울여도 움직이기 시작하고 등등..

더 필요한 물건은 x-ray ㅡ,.ㅡ;;;, 혹은 자석..


아래 사진과 같이 각 조가 상상하는 물건을 그리기도 해야 한다.

이 조는 상자 속에 연필깍이가 들어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각 조가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한 후 교수는 추가적인 실험을 위해서 필요한 물건에 대해서 물어본다.

우리 조는 처음엔 자석을 요구했고, 이어 빈박스와 우리가 생각하는 물건과 유사한 핀을 요구했다.



어떤 조는 저울을, 다른 조는 물통을 요구하기도 했다.

주어진 도구와 함께 추가로 실험을 진행한 후 자신들의 생각이 어떻게 변했는지 물어본다.

우리조는 추측에 대해 100% 확신했고 어떤 조는 추가실험 후 자신들의 생각이 전혀달라졌다고도 했다.



이렇게 실험이 끝나고 교수는 이것이 과학수업에서 이야기하는 "모델링"이라고 했다.

자연의 현상(박스안의 물건)이 관찰되면 눈에 확실히 보이지 않는 그것이 무엇이지 알아보기 위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능한 도구나 이론들을 가지고 실험하여 그것과 가장 유사한 "모델"을 만드는 것


그리곤 창밖의 흔들리는 나무를 가리키면서 "저기에서 어떤 과학적 현상이 보이느냐"고 학생들에게 질문했다.

물리과 학생들은 물리적인 내용을, 화학과는 화학을, 나는 생물적인 내용을 이야기 했다.


다시, "과학은 언제부터 있었느냐"고 질문하였다.

"중생기? 아니다 과학은 인간이 존재하면서 생겼다. 자연은 이미 있었고 과학은 자연을 관찰하기 위해 인간이 만든 도구이다."


마지막으로 교수는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인데, 박스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가르쳐주지 않겠습니다. 왜 안가르쳐 줄까요?"

한 학생이 "다음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에게 우리가 말할까봐요! ㅡㅡ;;"

"그것도 있고...결국 자연이란 것은 우리가 정확히 뚜껑을 열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는 계속해서 그것에 대해 "모델링"을 할 뿐입니다."


이 수업은 80년대 미국에서 한 교수가 모델링을 가르치지 위해 고안했던 수업이라고 한다.

그 교수는 대학교 1학년 학생들이 처음 과학수업을 받을 때 이 수업을 진행하였는데 그 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박스 속의 내용물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한다.


"자연"은 절대 그 진짜 모습을 인간에게 드러내지 않는다.


지난 시간에 이어 머리가 뻥! 하고 뚫리는 느낌이었다.


대학에서 생물을 전공하는 내내 들었던 수많은 의문점들, 

그리고 내가 점점 과학전공에 흥미를 잃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과 연관되어있었다.

대학에서 배우는 전공과 관련된 많은 내용들이, 

그리고 점점 전공이 심화될 수록 뭔가 더 상상속에 나래를 펼치는 것 같았던 기분,

저 내용들이 실제인지, 아니면 지금 과학자들이 추측을 하고 있는건지 아리송했던 수업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무언가를 가르치는 것 처럼 권위적이었던 교수들,

"그게 정말이예요? 그게 다 관찰되요? 그게 확실해요?"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넓따란, 학생들로 가득찬 강의실 뒤편에 앉아 그냥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던 시간들.


그래, 

과학은 확실한 학문이 아니다. 

과학은 인간이 만든 불확실한 학문이다.

다만, 자연을 연구하고 싶은 사람들이 머리를 대고 모여 저 현상이 무엇인지 추측하고 실험하고 수정하고 추측하고 실험하고 수정하고를 반복하는 과정일 뿐이다. 그러니 그걸 있는 그대로 그냥 받아들일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굳이 안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지금까지 선조(?)들의 업적(?)을 배우고 앞으로 어떻게 발전시킬지 연구하는 학문일 뿐인 것이다.

더 안다고 으시댈 필요도, 권위적일 필요도 없다.

아니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이 오히려 우스운 것이다.

과학은 겸손한 학문이다.

언제나 지금까지의 자신에 대한 오류를 받아들이고 수정할 준비가 되어있는 학문이다.

그래야 발전하는 학문이다.


다시..

과학이 공부하고 싶어지는 건...

그냥 느낌일까?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