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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보기/핀란드 생각공유

정체성

어제 점심, 학교에서 중견급 연구원 (Senior Researcher)으로 일하고 있는 동료, 사까리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 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 오후 사까리는 신체 활동지수(?) 측정을 하기로했는데 간단히 2키로를 걸으면서 심박수의 변화를 측정하는 거라고 했다. 지난 수요일 그와함께 운동을 해보니 몸놀림과 체력이 상당히 좋아보였기에 "니 활동지수는 보통 이상이겠다"라고 이야기하니 "아니, 난 보통 보다 낮을거야"라고 대답하였다. "응? 너 운동하는 거 보니깐 체력이 좋던데?" 그랬더니 사까리왈 "아, 내가 비교하는 대상은  Athlete 이야. 일반사람보다는 내 체력이 좋겠지만 요즘 운동을 하지 않아서 Athlete 보다는 체력이 안좋게 나올꺼야. 난 Athlete 이거든." 평소 Athlete이라는 단어를 "운동선수"라고 기억하고 있던 나는 "너 무슨 운동선수야?" 라고 물어보니 "아니 특별한 분야의 운동선수는 아니지만 난 나 자신을 Athlete이라고 생각해"라고 대답했다.


아직 그가 이 단어를 "운동선수"라는 말로 썼는지 "운동을 잘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가 스스로를 "Athlete"이고 생각한다는 것, 즉 "Athletic"이라는 정체성 (Athletic identity)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출처: http://www.samhi.ca/athletic-identity-understanding-perspective-student-athletes/)


하지만 그 뿐만 아니라 우리 학과 연구원 중, "운동선수"라는 정체성을 가진 또 한 사람을 알고있는데, 바로 우리과 학과장 얀네다. 얀네는 고등학교와 대학시절 역도선수였고 (정확한 대회명은 기억이 안나지만) 큰 역도대회에서 2위를 했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 여름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핀란드 북부에서 열리는 여름 역도캠프(?)에 참여한다고 했었다. 그는 지금도 좋은 몸을 유지하고 있으며 학과장이지만 계속해서 활발한 연구활동도 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동계올림픽에 참여하는 북유럽 국가 운동선수들은 대부분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의사, 변호사, 교사, 공무원 등등. 늘 금매달을 따가는 그들을 보면서 "저 사람들은 어떻게 일을 하면서 운동도 저렇게 잘 할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곤 했다. 왜냐하면 한국적인 상식으로 생각해보면 일을 할거면 일을하고 운동을 할거면 운동을 해야 둘 중 하나라도 겨우 잘할 수 있지, 만약 둘 다하려고 하면 이도저도 못하고 다리만 찟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의 생각은 달라보인다. 나는 연구원이라는 정체성도 있지만 또 운동선수 (혹은 예술가, 혹은 환경운동가, 혹은 아무거나 다) 이기도 하기 때문에 나는 일반사람보다 (그 분야에서 만큼은) 더 높은 표준과 목표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또한 노력한다.


아마도 우리학과에 이 두 사람말고도 자신을 연구원 외에 그 무언가로 정의하는 사람들이 꽤 많을 것이다.


나 역시 운동을 꽤 잘하는 편에 속했었고 지금도 못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운동은 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바라보았지 나 자신의 "정체성"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특히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운동을 할 기회조차 거의 없었고 또 운동을 하고 싶다는 말 조차 하기 힘들었는데 그건 직장인(사원)이 운동을 하는 것을 "사치"라고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할일이 얼마나 없으면 운동을 다 하냐? 안 바쁜가 보다? 임원정도는 되야 몸관리 차원에서 운동을 하는 거지" 같은 흔한 한국인의 시선 말이다. 이것은 또한 한국 사람에게 존재하는 일반적인 강박이기도 하다. 일을 하려면 일을 하고 운동을 하려면 운동을 해야지, 일과 운동 (혹은 다른 그 무언가)을 동시에 하려고 하면 한눈을 판다고 생각하는 편견말이다.


하지만 사람이 어찌 한가지 정체성만 가지고 살수 있을까? 아니 왜 그렇게 한곳만 보면서 살아야 할까? 그것이 소위 말하는 성공을 보장하지도 않는데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이 강박의 다양한 사회적 폐단들을 여러해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며 살고있다. 이제는 이 편견과 강박이 우리 문화속에 계속있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지 자문해야 할 시기인것 같다.




이 경험이후 나도 다시 한번 내 정체성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것에 "운동선수"라는 요소를 더해볼 수 있을지...천천히 시험해볼 생각이다.


내일 또 농구시합이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