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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보기/핀란드 일상생활

하루만에 요엔수에서 헬싱키를 오고갔던 여름휴가 이야기

7월 한달간 아내는 논문으로, 나는 아이와 함께 바쁜 여름을 보내고 8월 첫 주 오슬로로 1주일간 여름 휴가를 떠나려던 날 아침...우리는 둘째 임신 사실을 알게되었다. 와우!!! 까르야, 동생이 왔다!


임신초기이기에... 여행을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닥 장거리 비행도 아니었고 (헬싱키->오슬로 1시간 10분), 까르가 규칙적으로 밤에 12시간 이상씩 통잠을 잤고, 예약한 오슬로 시내의 비싼 방과 비행기는 취소불가에다, 또 헬싱키에 사는 친구네 집에서 2틀간 머물기로 약속도 했었기 때문에 일단은 떠나보기로 했다. 


헬싱키에선 이 가족외에 또 다른 한 가족도 만날 예정이었고 주말에는 교회도 갈 생각이었기에 우리는 차를 가지고 헬싱키로 출발하였다. 요엔수에서 헬싱키는 약 다섯시간 거리 (500 km), 아이와 함께 가기에 결코 짧은 거리는 아니었지만 다행히 까르가 잘 버텨주어서 가는 길에 한번정도 쉬고 대략 6시간 만에 헬싱키 반따에 사는 일본인 친구집에 도착하였다.


<출처: https://yle.fi/uutiset/3-6179565>



친구네 집은 투룸 아파트였는데 방 하나를 우리에게 내어주고 남은 방에서 친구부부 그리고 2명의 아이가 함께 자겠다고 했다. 당시 핀란드 날씨가 한창 더웠었기 때문에 4명이 한방에서 자는 건 힘들거 같아 괜찮겠냐고 하자 오히려 나보고 혹시 자다가 너무 더우면 거실에 나와 자도 된다며 자기네는 괜찮다고 했다. 이 일본인 친구부부는 우리가 핀란드에 온 해 함께 요엔수로 온 가정이었고 또 집도 근처에 있었어서 가깝게 지내던 가정이었었는데 남편이 헬싱키에 직장을 잡아 이사를 가는 바람에 지난 1년 반동안 거의 보지 못했었다. 그래서 오슬로에 가는 길에 일부러라도 들려서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왔었는데, 와서 보니 두 식구가 자기에는 집이 넓지 않아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이곳에 오기전 요엔수에 사는 또 다른 핀란드 친구가정이 아이 둘과 함께 지난 여름 이 일본인 친구가정에서 일주일간 잘 지내고 갔다는 말에, 우리는 그 집보다 아이가 적으니 당연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우리 생각이 짧았었다는 건 그날 밤에 바로 드러났다.


친구 부부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저녁을 맛있게 먹고 함께 저녁시간을 잘 보낸 후 8시 쯤 우리는 평소처럼 까르 (19개월)를 재우려고 시도하였다. 집에 있을 때 까르는 보통 7시 반쯤 혼자 자신의 침대에다 잠을 재우면 다음날 8시까지 통잠을 잤었기 때문에 친구네 집에서도 잘 될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는데...그건 우리의 착각이었을 뿐...새로운 환경에 들뜬 까르는 좀 처럼 잠에 들지않았다. 뿐만 아니라 거실에서는 일본인 친구네 아이들이 잠을 안자고 TV를 보고 있었는데 이 집 아이들은 보통 9시에서 10시 사이에 잠에 든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거실에서 노는 소리에 까르도 덩달아 잠에 들지 못했고 또 까르를 재우던 아내도 잠을 못자는 아이가 안스러워 까르를 아기침대에서 꺼내어 함께 자신의 침대에 눕혀놓고 있었기에 아이는 좋아라 엄마 옆을 뒹굴며 잠을 자지 않았다... 그렇게 밤 10시 11시 12시 새벽 1시... ㅡ.ㅡ;;;; 10시 어간에 이집 아이들은 잠에 들기 시작했는데 늘 잘자던 까르는 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작년 가을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했던 첫날도 아이가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늦게까지 못자고 운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호텔이었고 우리 세식구만 방에 있었기 때문에 아이를 어느정도 울리면서 환경에 적응하게 했었다. 그러자 다음날 부터 아이는 바뀐 환경에 잘 적응하며 여행 내내 통잠을 잤었는데... 이곳에는 우리 옆방에 이미 잠에 든 2명의 아이들이 있었기에 까르를 울게 둘수가 없었다. 방법을 바꿔 아이를 안고 달래니 까르는 오히려 더 신나서 잠을 자지않았다. 


그렇게 새벽 2시... 우리는 결정을 해야만 했다. 임신 초기인 아내와 이 잠못드는 아이와 함께 일주일간 여행을 잘 할 수 있을까. 이 여행이 뱃속의 아기에게 안전할까. 


그리고 새벽 2시반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오늘을 어찌어찌 넘긴다고 해도 내일 또 이 집에서 자야하는데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아내가 너무 힘들것 같았다. 사실 올해 초 한국을 방문할 때 이번 상황과 유사하게 여행 하루전 아내의 임신을 알게되었었는데 한국에서 이미 잡아 놓은 몇가지 중요한 일정도 있었고 또 막연히 괜찮겠지 하는 생각으로 별 고민없이 한국으로 갔었다. 하지만 긴 여행과 시차, 또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일정이 아내에게 너무 무리가 되었었는지 한국에서의 2주 일정을 마치고 핀란드로 돌아오기 하루 전 자연유산이 되었던 아린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그 경험 덕분에 이번에 우린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결정을 좀더 쉽게 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기로 함께 확정을 하고 잠자던 친구부부를 깨워 이런저런 사정을 말하고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친구부부도 이해는 하면서도 우리가 지금 출발하면 너무 피곤하지 않냐며 걱정을 해주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한시라도 빨리 우리 집에서 쉬는게 낫겠다싶어 새벽 3시, 우린 요엔수로 다시 출발하였다.


놀랍게도 친구집에서 전혀 잠을 못이루던 까르는 카시트에 앉자마자 기척도 없이 잠에 들었다. 잠에 든 까르를 확인하고 우리는 쉬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너무 힘들고 졸려웠다. 막판엔 아내도 졸고 운전하던 나도 조금 졸았다. 순간순간 사고나지 않게해달라고 무지 기도하면서 달렸던 것 같다. 까르는 종종 깨서 1분 정도 자지러지게 울다가 먹을 것을 지워주면 그걸 그냥 손에 들고 다시 잠이 들었다...깼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한번도 쉬지않고 달려서...아침 8시...우리는 무사히 요엔수에 도착했다. 전날 오전 11시에 출발했었으니 약 21시간 만에 요엔수에서 헬싱키를 왕복한 것이었다. 1000km를 아기와 함께...


우린 그날 도착하자 마자 모두 함께 잠이 들었다가...저녁에 잠깐 깨서 밥을 먹고...다시 잠에 들어 다음날 아침까지... 쉬지않고 잠을 잤다... 아이도 아내도 나도...


그리고 다음 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아이는 다시 생활 패턴을 찾았고 원래대로 통잠을 자주었다.


지금 생각해도 이 하루는 너무 피곤하고 힘든 경험이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아이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소중히 키워야겠다는 결심을 했던 날이었던 것 같다. 다행히 아기는 지금도 엄마 뱃속에서 잘 자라고 있고, 여행에서 다녀온 아내는 첫째 때와 마찬가지로 심한 입덧을 두달간 견뎌야 했지만 그 입덧도 이제 마무리가 되어간다. 고생했어 여보!